Page 101 - 한국가스공사 40년사 1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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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1부 | 도전과 성장의 30년
에 이를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앉은 채로 막대한 적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
는 지경이었다. 1996년 1,700억 원의 흑자를 기록한 한국가스공사의 경영
실적은 1997년 들어 3,355억 원에 이르는 적자와 함께 556%까지 치솟은
부채비율을 기록했다.
환율이 폭등하면서 LNG 수입대금이 큰 폭으로 상승했음에도 정부의 국
민부담 완화 방침에 따라 국내 천연가스 판매가격 인상이 유보됐고, 가스
요금 또한 제자리걸음을 계속했다. 이는 천연가스 대금을 달러로 지불해
야 하는 한국가스공사의 적자로 고스란히 이어졌다. 한국가스공사는 결국
창립 이래 최대 위기가 도래했다.
강도 높은 자구책,
혁신을 넘어선 혁신으로
1996년 3월 한국가스공사는 제2창업 선언과 함께 그 구체적인 실천방안
으로 ‘FRESH KOGAS 21’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함으로써 경영 위기를
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나섰다.
당시 정부는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산하기관과 공기업의 광범위
한 구조조정과 민영화를 추진하는 한편, 경영혁신을 통한 정원 감축 등 다
양한 대책을 시행했다. 한국가스공사는 이러한 정부 방침에 부응해 강도
높은 자구책을 추진한 끝에 조기에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. 특히 이
시기에 거둔 여러 괄목할 만한 성과 중에서도 단연 두드러진 것이 바로 경
영 위기 극복이었다. 경영 전반에 불어온 대대적인 혁신의 바람이 강도를
더하면서 외환위기의 늪으로부터 서서히 빠져나와 정상화의 길로 들어설
수 있었다.
위기 극복을 위한 대대적인 경영혁신이 추진된 가운데 공기업 최초로 최
고경영자인 사장이 급여를 자진 반납하고, 임원과 노조도 뒤따라 일정액
을 반납하는 비상조치에 동참했다. 인원 감축에도 착수했다. 대규모 명예
퇴직과 일부 업무의 아웃 소싱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319명의 직원이 가
스공사를 떠났고, 1998년 초 2,891명이던 임직원의 수는 10본부 34처에
• 1996년 3월 한국가스공사는 제2창업 선언과 함께 그 구체적인 실
천방안으로 ‘FRESH KOGAS 21’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함으로써 경영 위기를 극복할 수 있
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나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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